(송의달 컬럼리스트) 디지털 혁명 시대, 한국 신문이 생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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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 시대, 한국 신문이 생존하려면...


영국 옥스퍼드대학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매년 실시하는 국가별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2020년까지 4년 연속 40개국 중 꼴찌였다. 조사대상 국내 주요 신문사들에 대한 불신 비율(60%선)은 신뢰율(30%대) 보다 두 배 정도 높다.

신문사 마다 유능한 기자들이 대기업과 중견기업, 신생 기업으로 떠나는 사례가 매년 증가하고, 공채 신입기자의 절반 정도가 입사 3~4년 내 떠나는 바람에 허탈해하는 메이저 신문사들이 늘고 있다.

신문기자는 관료, 대학 교수 등과 함께 한국의 3대 지식인 문사(文士) 집단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이런 자부심은 옛날 얘기다. 신생 기업 보다 못한 급여와 복지, 기자 직업에 대한 사회적 냉소, 미래 비전이 사라진 내부 분위기 등. “주위와 앞날을 아무리 둘러봐도 어두운 벽(壁) 뿐이었다”고 퇴사자들은 말한다.

더욱이 2007년 스마트폰 발명과 코로나 팬데믹 확산으로 한층 탄력을 더하는 디지털 혁명 충격은 그렇잖아도 휘청거리는 신문사와 종사자들을 자포포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중첩 위기에 처한 한국 신문이 활로를 찾으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의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천지개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달라진 한국 사회와 고객(독자)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1990년 6303달러이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만1755달러로 4배 넘게 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수준 즉 지식과 정보 역량 변화이다.

교육부 통계를 보면, 2020년 한 해에만 8만3034명의 석사와 1만6139명의 박사들이 탄생했다. 작년까지 최근 10년동안 국내의 신규 석박사들은 67만명이다. 대학 진학률은 1990년 33.2%에서 2008년 84%까지 올랐다가 지난해는 72.5%를 기록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30년 새 세계 경제 10강(强)의 선진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지식·학습 강국이 됐다는 방증이다. 조찬 공부 모임과 포럼, 직장인, 임원들의 학습열이 한국만큼 높은 나라는 없다. ‘샐러던트(sala-dent·샐러리맨과 스튜던트의 합성어로 공부하는 직장인이란 뜻)’라는 한국 만의 용어가 이를 상징한다.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60%가 넘고, 매년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해외 여행(출장·연수 포함)하는 세계 5위권의 ‘글로벌 국가’이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IT 인프라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최고 문해력을 갖춘 국민들의 디지털 기기 활용능력과 확산 속도는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례가 없다. 올림픽·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5강 안에 드는 나라이다.

문제의 뿌리는 수많은 훈수(訓手)를 두며 사회 발전에 앞장선 한국 신문이 정작 스스로 혁신 노력은 하지 않고 199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데 있다. 특파원 숫자, 국제 기사의 품질과 수준, 디지털 인력과 역량 등 모든 지표에서 신문사는 후진적이다. 매년 10만명의 석·박사가 생겨나는데 “신문 기사는 중학교 2학년이 읽고 이해될 수준이어야 한다”고 믿는 기자들이 아직도 많다. “한국의 기업은 1~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면, 지금 한국 신문이 기업이나 정부 보다 낫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신문이 디지털이란 껍데기만 갈아끼워서는 디지털 시대에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30년 간 미뤄놓은 ‘혁신의 숙제’들을 해결하면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시대적 숙명을 수용하며 바꿔야 한다.

‘혁신’의 숙제들이란 1990년에 고정된 신문사 경영 구조와 편집국 운영 체계, 콘텐츠 제작법, 인력 관리 등의 개선을 뜻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급변하는 복합 선진국이 됐는데, 대다수 신문사 편집국은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출입처 취재, 신입기자 채용, 기사 형태, 광고 및 기업 협찬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 캐캐묵은 경영을 혁신하고 운용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자는 말이다.

그러러면 세계 최고의 디지털·글로벌된 지식·학습 국가인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에 걸맞게 신문사의 정체성과 비전, 기자의 역할과 임무를 재정의해야 한다. 일례로 기자의 임무는 지금처럼 조각조각 단편적 사실에 대한 진술을 다시 전하는 일이 아니다. 진행되는 여러 이슈들에 대한 큰 그림과 맥락을 정리하고, 제시되는 주장들 가운데 어떤 부분이 신뢰할 수 있는지를 분별하는 ‘정리자’이자, ‘검증자(authenticator)’가 돼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 체질 혁신을 못한다면 ‘기레기’라는 오명은 더 거세지고 더 굳어질 것이다. 사회 선도(先導)는 고사하고 기생(寄生)하는 낙오자라는 뜻에서다. 그런 측면에서 검증된 경력기자들을 주로 뽑고 차장→부장→국장의 직위 구조 대신 능력있는 60~70대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는 ‘전문성 중시’의 뉴욕타임스(NYT) 사례는 참고할만하다. 단적으로 2015년부터 워싱턴지국장인 엘리자베스 부밀러 기자는 1956년생이고, 게일 콜린스 전 논설실장은 1945년생이지만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로서 매주 2회 NYT에 칼럼을 쓴다.

이런 혁신 노력과 디지털 네이티브인 MZ 세대를 제작과 소비의 주체로 끌어들이고 최고 경쟁력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해 투자하는 것과 같은 디지털화 노력을 경주할 때, 한국 신문사들의 진운(進運)이 열릴 수 있다. 신문이 앞으로도 경영과 신뢰도에서 내리막길을 계속 걷는다면, 견제와 균형 상실로 한국 민주주의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오너와 경영진, 구성원 모두 패배 의식을 내려놓고 시대와 민족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라는 격랑적 도전을 혁신의 호기(好機)로 삼겠다는 담대함과 용기를 발휘할 때다. 세계 최고의 집중력과 실행력을 지닌 한국의 신문 종사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신문 업종에서도 혁신과 도약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 : 송의달 조선일보 편집국 산업부 선임기자

서울대 외교학과 및 동 대학원 외교학과 졸업, 조선일보 산업1부장, 디지털뉴스부장, 오피니언 에디터를 지냈고 자회사인 조선비즈 대표(CEO)를 역임했음. 올 4월말 출간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을 비롯해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의회>(2000년), <미국을 로비하라>(2007년),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2020년) 같은 다수 저서를 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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